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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베르거 [Froberger, Johann J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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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베르거(Johann Jacob Froberger)

1616년 5월 19일 슈트트가르트에서 세례를 받음, 1667년 5월 6(7?)일 에리쿠르트 성(몽벨리아르드 근교)에서 사망.
독일 작곡가. 슈트트가르트의 궁정카펠마이스터였던 바실리우스(Basilius) 프로베르거의 아들. 프로베르거의 선생은 그의 아버지와 슈트트가르트의 슈타익레더(Steigleder)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637년 1월부터 10월까지 그는 비엔나의 궁정오르가니스트로서 활동하였고, 그 후 비엔나 궁정의 후원으로 로마로 가서 그곳에서 프레스코발디로부터 수학하였다. 1641-45년, 1653-57년에는 다시 비엔나의 궁정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였으며, 그 중간 시기와 그리고 1657년 이후에는 드레스덴, 브뤼셀, 파리, 런던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여러 나라의 양식들(이태리의 프레스코발디, 프랑스의 고티에, 영국의 버지날리스트들)을 혼합하였으며, 이를 여러 독일어 지역으로 전파하였다. 특히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나 칸초네에서는 프레스코발디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귀도 아들러가 편찬한 오르간과 클라비어를 위한 작품전집에는 그의 25개의 토카타와 18개의 카프리치오, 14개의 리체르카르, 8개의 판타지, 6개의 칸초네, 20개의 모음곡, 4개의 모음곡악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그에 의해 쓰여졌으나 그의 생애에 출판된 것은 단지 키르셔의 “Musurgia”와 로버데이의 “푸가와 카프리치오”에 각각 하나씩 수록된 것이 전부이다. 다른 것들은 엄청난 양의 필사본으로 전파되었다. 그의 영향은 세바스찬 바흐와 헨델의 쳄발로작품들에도 이어진다. 그의 오르간 작품들은 소수의 교회 성악작품들에 비해 수적으로 훨씬 많다.

등록일자: 2005-08-29
나진규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프로베르거, 요한 야콥(Froberger, Johann Jacob, 1616-1667)

- 1616년에 독일의 슈트트가르트(Stuttgart)에서 출생. 아버지 바실리우스(Basilius F.)는 슈트트가르트(Stuttgart)의 궁정 카펠마이스터였음. 
- 아버지와 슈타익레더(J. U. Steigleder)에게서 처음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정됨. 
- 1637년 1월-10월까지 빈의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함. 
- 이후에는 황제 페르디난도 3세(Ferdinando III)의 후원으로 로마로 유학을 가서 프레스코발디(G. Frescobaldi)에게서 수학함. 
- 1641-1645년과 1653-1657년에는 다시 빈(Wien)에서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함.
- 1645-1653년과 1657년 이후에는 드레스덴(Dresden), 브뤼셀(Brüssel), 파리(Paris), 런던(London) 등 여러 곳을 여행함. 드레스덴에서는 베크만(M. Weckmann)과 연주시합을 벌인 후 친구가 됨. 
- 1657년에는 황제 페르디난도 3세가 세상을 떠나자 궁정 오르가니스트의 직분에서 해고됨. 
- 1665년에는 마인츠(Mainz)의 선제후 대주교 궁정과 잠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임. 
- 1667년 5월 6일(또는 7일)에 에리쿠르 성(Héricourt, 몽벨리아르드 근교)에서 사망.

프로베르거의 작곡양식은 여러 나라의 양식(이탈리아의 프레스코발디 양식, 프랑스의 고티에 양식, 영국의 버지날리스트 양식)을 혼합한 형태를 띠는데, 이는 그가 유럽의 여러 나라에 체류하였던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의 스승인 이탈리아 작곡자 프레스코발디였다. 예컨대 프로베르거는 프레스코발디로부터 건반악기를 위한 악곡에 대위법적인 기술을 첨가하는 것을 배웠는데, 이는 그의 수많은 판타지와 카프리치오, 리체르카르, 칸초네 등에서 증명된다. 그의 장인적인 토카타에서는 프레스코발디의 영향이 마드리갈 연주와 같은 자유로운 전개에서 나타난다. 
프로베르거의 작품에는 프레스코발디의 것과는 다른,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연관된 새로운 면들도 나타났는데, 프레스코발디의 작품이 아직 옛 교회선법의 시스템에 확고히 뿌리를 두었던 반면, 프로베르거의 작품은 대체로 현대적인 장단조 조성에 기초를 두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베르거는 ‘형식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는 장단조 조성을 토카타의 대립적 단락들의 구분에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것도 프레스코발디의 작곡방식과는 구별되는 점이다. 프로베르거의 이러한 다양한 작곡기법은 후에 이탈리아적이며 남독일적인 요소로서 바흐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한 헨델의 쳄발로 작품도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프로베르거의 성악곡은 단지 두 개만 남아있고, 다른 것은 모두 소실되었다. 프로베르거가 로마에서 자기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카리시미(G. Carissimi)에게 보냈다는 다성부 시편작품도 현재 남아있지 않다. 현존하는 것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계속저음 반주에 기초한 두 개의 3성부 모테트 뿐이다: ≪할렐루야, 죽음이 삼켜졌도다≫(Alleluia, absorpta est mors) ≪사도들이 나타났도다≫(Apparuerunt apostolis).
  반면에 프로베르거의 건반음악 작품은 그의 종교적 성악작품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다. 아들러(G. Adler)가 편찬한 그의 오르간과 클라비어를 위한 작품전집에는 25개의 토카타와 18개의 카프리치오, 14개의 리체르카르, 8개의 판타지, 6개의 칸초네, 20개의 모음곡, 4개의 모음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그가 살아있는 동안 출판된 것은 단 두 2곡뿐인데, 그 중의 하나는 그가 로마에서 사귀었던 학자이며 음악이론가였던 키르셔(A. Kircher)의 학습서 『범세계적 음악박물관』(Musurgia universalis 총 2권 중 제1권, p.466, 로마 1650)에 수록된 ≪6음계 판타지≫(Hexachordfantasie)이고, 다른 하나는 로버데이(F. Roberday)의 ≪푸가와 카프리치오≫(Fugues et caprices, 1660)에 수록된 리체르카르이다. 키르셔의 『범세계적 음악박물관』에 수록된 프로베르거의 작품은 그곳에서 ‘판타지 스타일’(stylus phantasticus)의 모범적인 예로서 실려 있는데, 모차르트도 비엔나 시절에 그 작품의 한 부분을 복사하여 소유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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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필사본으로만 존재하다가, 그가 죽은 후에 마인츠(Mainz)에서 인쇄물로 나타났다: ≪매우 재치 있고 드물며 다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다양한 부분들≫(Diverse ingegnosissime, rarissime et non maj piu viste curiose partite…, 1693), ≪진기하고 매우 드문 다양한 부분들≫(Diverse curiose e rarissime partite…, 1695). 이들 작품의 약 절반은 그의 후원자인 페르디난도 3세와 그의 후계자인 레오폴트 1세에게 헌정된 것이다. 이들 작품 중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프랑스 무곡의 영향을 받은 클라비어 모음곡들로서, 그것들은 비록 바흐에게서처럼 ‘알라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의 순서를 따르지는 않지만(그에게서는 지그가 아예 없거나 두 번째 자리에 위치하는 것이 더 많음), 그에게서 처음으로 일정한 배열을 갖게 된다. 이로써 프로베르거는 고전 모음곡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그의 모음곡들은,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출판한 아들러(G. Adler)가 말하는 것처럼, 17세기에 쓰여진 것들 중 가장 탁월한 작품에 속한다. 대표적인 예로서는 클라비어 모음곡 제1번 a단조(알라망드-쿠랑트-사라방드)와 제12번 C장조(알라망드-지그-쿠랑트-사라방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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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곡 외에도 프로베르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그의 후원자였던 황제 페르디난도3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애가(哀歌)가 있다. 이것은 건반악기를 위한 f단조 곡으로서 파반느에서 유래된 3부분 형식에 기초하며, 모든 부분은 반복된다. 곡의 끝에서 f’’음이 3번 연속해서 울리는데, 이것은 페르디난도의 ‘F’와 3세의 ‘3’이라는 숫자를 상징한 것이다.

참고문헌

Annibaldi, C. “Froberger in Rome: from Frescobaldis Craftsmanship to Kircher’s Compositional Secrets”, CMc, no. 58, 1995, pp. 5-27.
Leonhardt, G. “J. J. Froberger and his Music”, L’Organo 6, 1968, pp. 15-40.
Rampe, S. “Matthias Weekmann und J. J. Froberger: Neue Erkenntnisse zu             Biographie und Werk beider Organisten.” Musik und Kirche 61, 1991, pp. 325-332.
Siedentopf, H. J. J. Frobergers Leben und Werk. Stuttgart, 1977.
__________. Studien zur Kompositionstechnik Johann Jacob Frobergers. Tübingen, 1977.
Silbiger, A. “The Roman Frescobaldi Tradition, c. 1640-1670.” JAMS, xxxiii, 1980, pp. 42-87.


등록일자:2010.1.25.
[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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