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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후데 [Buxtehude, Dieterich(Dietrich)]
1,013회
북스테후데(Dieterich 또는 Dietrich Buxtehude,  1637경 올데스로에(?), 헬싱보르크(?) -  1707.5.9. 뤼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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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하우트(Johan Voorhout)의 그림(1674). 함부르크 역사박물관 소장.  악보를 앞에 둔 사람은 북스테후데(Buxtehude), 쳄발로를 치는 사람은 라인켄(Reinken), 왼쪽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는 타일레(Theile)

덴마크 출신의 독일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바흐 이전 북부 독일의 가장 중요한 오르간 음악 작곡가로 간주된다.
디트리히(또는 디터리히) 북스테후데는 홀스타인 지방 올데스로에(지금의 바트 올데스로에 Bad Oldesloe) 또는 헬싱보르크(Helsingborg)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일과 출생지를 입증할 자료는 없다. 더군다나 그의 국적이 어딘지 논란이 된다(당시 덴마크에 속했던 홀스타인 지방에서 태어나 30세까지 그곳에서 지냈고, 이후 약 40년은 독일 뤼벡Lübeck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Johannes 1601/02-1674)는 헬싱보르크 마리아교회(1641)와 덴마크 헬싱게르(Helsingør) 성 올라이교회(St. Olai Kirke) 오르가니스트(1641/42-1671)였다. 디트리히트는 아마 헬싱게르에서 라틴어학교를 다녔고, 음악수업은 아버지에게 받았을 것이다. 그가 오르가니스트로 처음 일을 시작(1657경)한 곳은 바로 그의 아버지가 전에 일 했던 헬싱보르크 교회이다. 1660년 그는 다시 헬싱게르로 돌아왔고, 이곳 독일 교구에 속한 마리아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1667년 뤼벡의 성 마리아교회 오르가니스트 툰더(F. Tunder)가 죽자, 북스테후데는 그 후임 자리를 얻으려고 그곳으로 갔다. 이 교회는 북부 독일에서 중요한 교회 중 하나였는데, 북스테후데는 1668년 오르가니스트와 베르크마이스터(Werkmeister: 교회 서기, 회계, 행정의 직무)로 뽑혔다. 당시 이 교회 오르가니스트는 보통 이러한 일을 겸해서 했고, 봉급도 따로 더 받았다. 취임 후 8월 그는 전임자 툰더의 막내딸과 결혼했다. 결혼을 조건으로 그가 후임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임자의 딸과 결혼하는 것은 하나의 관습 이었다 (후일 북스테후드의 후임자도 그의 딸과 결혼한다). 북스테후데는 결혼하여 7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중 네 명만이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북스테후데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진  곳은 뤼벡이다. 그의 공식적인  임무는 주일 미사, 축일과  주일 오후 예배, 기도회  때의 오르간 연주였다. 추가로 성찬식 때 회중찬송을 위한 코랄전주나  성가대의 연주에  앞선 기악서주를 담당했고, 또 자주  기악, 성악 연주자들과 협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공식적  임무와는 전혀 무관했던 <저녁음악회>(Abendmusik) 이라는  연주회 때문이다. 이것은  툰더가 1646년 처음  실시한 것인데, 툰더는 평일에 이 연주회를  열었었다. 북스테후데는 평일에 열렸던 이 <저녁음악회>를 1673년부터 새로 조정하여,  일년 중 5회 특별히 정해진 주일 (둘째부터 네 째 대강절, 성령강림절 후 23, 24번째 주일), 오후예배 후에 실시하였다. 합창, 레치타보, 장절적 아리아, 코랄편곡 등이 기악작품들과 짜여 연주되었고, 1678년부터는 극적인  종교 작품도 상연되었다. 해마다 <저녁음악>을 위해 새로운 곡이 작곡되었는데, 불행히도 이 <저녁음악>으로부터는 지금까지 몇 곡만이 발견되었다. 무명으로 전해졌고, 막스톤(W. Maxton )에 의해 발견, 출판(1939)된  일종의 오라토리오 『최후의  심판』 (Das jüngste Gericht, BuxWV Anh. 3)은 1682년 <저녁음악회>를 위한 북스테후데의 작품인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오라토리오 중에서는 단지 3개의 대본만이 전해진다. 『어린양의 결혼』(Hochzeit des Lamms, 1678), 『슬픔의 성곽』(Castrum doloris )(1705), 『비탄의 성전』(Templum honoris ) (1705). 
북스테후데는 특히 오르가니스트로서도 동시대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마테죤(J. Mattheson)과 헨델이 함부르크에서 뤼벡으로 그를  방문(1703.8.17)하였고, 1705년 바흐는 450Km 떨어진 아른슈타트(Arnstadt )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배우려고 뤼벡으로 왔다. 실제로 환상적이며, 화성적으로 특이한 북스테후데의 음악은 바흐에게 영향을 끼쳤다. 젊은 오르가니스트들 중에 브룬스(N. Bruhns )가 북스테후데의 제자였으며,  파헬벨 (J. Pachelbel)은 그의 작품『아폴로의 헥사코드』(Hexachordum Apollonis, 1699)를 북스테후데에게  헌정하였다. 
북스테후데의 여행에 관한 기록은  별로 없다. 포르하우트 (Johannes Voorhout 1647-1723)가 1674년 완성한  그림(위 참조)은 북스테후데와 함부르크의 오르가니스트인 라인켄(J. A. Reincken)의 절친한 사이였음을  알려준다. 북스테후데는 자주 함부르크를 방문하였을  것이다. 또 이곳에서  베른하르트(Chr. Bernhard)와 벡크만(M. Weckmann)을 알게 됐을 것이다.
타일레와(J. Theile)의 친분관계는 북스테후데가  타일레의 『마태수난곡』(1673)을 위하여  기부한 시와, 타일레의『미사 집』(1673) 출판을 경제적으로  도와 준 사실을 통해 증명된다.  북스테후데의  시들은 또한 베르크마이스터(A. Werckmeister)의 저서『음악의  조화』 (Harmonologia musica, 1702)에도 소개되었다.  베르크마이스터는 북스테후데의  오르간작품중의 많은 부분을  발터(J. G. Walther )에게 넘겨줬고, 이것들은 발터의 수서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북스테후데는 스톡홀름의  뒤벤 가문과도 친분이 있었다. 북스테후데의 성악곡은  대부분 형 구스타프  뒤벤(Gustaf Düben )의 모음집(필사본)에 보존되었다.

북스테후데는 1707년 5월 9일 사망했고, 마리아교회에, 그의 아버지와 먼저 죽은 네 딸 곁에 묻혔다. 북스테후데의 후계자로 마태죤이 고려되었으나(1703), 그의 딸과 결혼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마태죤은 후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북스테후데의 후계자는 이전에 그의 조수였던 쉬퍼덱커(J. C. Schieferdecker)가 되었다(1707.6. 23). 그도 오르가니스트와 베르크마이스터의 직무를 겸했고, 9월 북스테후데의  딸과 결혼하였다. 

북스테후데의 주제별 작품 목록(BuxWV). 
카르슈테트(G. Karstädt)는 북스테후데의 전 작품을 주제별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성악곡(BuxWV 1-124)
소실된 작품(BuxWV 125-135)
기악곡(BuxWV 136-273)
미완성 작품(BuxWV 16, 154, 216, 270)
불확실하거나 잘못 간주된 작품((BuxWV  Ahn. 1- 13)

성악곡(BuxWV 1-124).
직업 오르가니스트인 북스테후데가 성악곡을 작곡해야할 의무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르간을 위한 작품(약 90곡)보다 성악곡(120곡 이상)을 더 많이 작곡하였다. 이들 성악작품에는 가사, 형식, 양식, 편성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곡들이 포함되어있다. 4종류의 언어가 가사로 사용되었고, 한 성부(독주 악기와 쳄발로)를 위한 곡(BuxWV 64, 96)에서부터 시작하여 6개의 합창단(BuxWV 113)이 편성된 대 규모의 성악곡도 있다. 다 성부 성악콘체르토와 아리아로 구성된 북스테후데의 교회칸타타는 그의 성악작품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교회칸타타는 모두 독일어 가사로 되어있다. 단지 한 작품 『우리는 예수의 몸』(Membra Jesu, 1675-87) (BuxWV 75)은 예외이다. 이 작품은 라틴어 가사로 된 7개의 연곡 칸타타이며, 1680년 뒤벤에게 헌정되었다.

기악곡(BuxWV 136-273).
북스테후데의 기악음악은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BuxWV 136-250 )과 실내악(BuxWV 252 -273 )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오르간곡(BuxWV 136-224 )은 대략 90곡정도인데, 여기에는 프렐류드(BuxWV 136-165), 칸쪼네(BuxWV 166-176, 225),  오스티나토 작품(BuxWV 159-161), 코랄편곡(BuxWV 177-224)들이 포함되어있다. 
프렐류드 장르에서 북스테후데는 바흐의 직접적인 선구자로 평가될 수 있는데, 그의 프렐류드(어떤 곳에는 토카타 또는 프레암불룸[Präambulum]이라고 함)는 즉흥연주적이며 푸가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북스테후데의 칸쪼네(칸쫀 canzon, 칸쪼네트 canzonet, 또는 푸가라는 표제를 붙이기도 함)는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엄격 대위법 양식으로 되어있다. 
3곡의 오스티나토저음 변주곡은 북스테후데의 가장 잘 알려진 오르간 작품에 속하며, 브람스와 바흐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파사칼리아의 형식적 구조를 보여주는 작품 BuxWV 161은 특기할 만 하다. 이 곡은 4부분(d-Moll, F-Dur, a-Moll, d-Moll)으로 구성 되었는데, 각각 7음의 오스티나토로 구성된 7개의 변주곡들을 갖는다. 
코랄편곡은 47곡에 이른다. 코랄을 처리한 수법에 따라 3개의 그룹 즉, 코랄변주곡, 코랄판타지, 고랄 전주곡으로 나누어진다. 그의 코랄전주곡은 아마도 뤼벡교회 회중찬송의 전주를 위해서 작곡되었을 것이다.
모음곡(BuxWV 226-244)은 19곡이며, 거의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의 일반적인 순서로 되어있고, 가끔 두블이 첨가된다. 세속 변주곡(BuxWV 245-250)은 6곡이다. 이중에 베르가마스크(Bergamasca)에 관한 32개의 변주곡『카프리치오』(La Capricciosa, BuxWV 250)는 뛰어난 작품이다. 여기에는 또한 지그, 사라방드, 미뉴엣의 리듬변주도 포함되어있다.

실내악(BuxWV 252-273).
북스테후데의 실내악은 2개의 현악기와 계속저음을 위한 트리오 소나타(21곡)이다. 이것은 양식적 다양성으로 보아 뛰어난 작품들이다.  바이올린, 비올라 다 감바, 쳄발로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 op. 1(BuxWV 252-258)과 op. 2(BuxWV 259-265)에는 각각 7개의 소나타가 포함되어있고, 이 두개의 곡 집은 그가 살아 있을 때 1694년과 1696년 함부르크에서 인쇄되었다. 나머지 7개의 소나타(BuxWV 266-273)는 필사본으로 전해진다.

곡집
전집(GA), 출판: Glaubensgemeinde Ugrino, 전8권, 제1권-2권(Klecken,1925-26), 제3권-8권(Hamburg,1930-58); 오르간 전집(Sämtliche Orgelwerke),전2권, 편찬: Kl. Beckmann, Wiesbaden 1971, 개정1997; 오르간 전집(Sämtliche Freie Orgelwerke), 편찬: Chr. Albrecht, Kassel 1994; 저녁음악과 교회칸타타(Abendmusiken u. Kirchenkantaten), 편찬: M. Seiffert, Leipzig, 1903(=DDT 14), 개정(H. J. Moser) 1957; 모음곡과 변주곡 전집(Sämtliche Suiten und Variationen), 편찬: Kl. Beckmann, Wiesbaden 1980; 소나타(Sonaten für V., Gambe und Cemb.), 편찬: C. Stiehl, Leipzig, 1903(=DDT 11), 개정(H. J. Moser)1957.

참고문헌
M. Geck: Die Vokalmusik Dietrich Buxtehudes und der frühe Pietismus, 1965.
S. Sorensen: Das Buxtehudebild im Wandel der Zeiten, 1972.
C. Defant: Kammermusik und Stylus phantasticus, Studien zu Dietrich Buxtehudes Triosonaten, 1985.
K. J. Snyder: Dieterich Buxtehude, Organist in Lübeck, New York, 1987.
Hermann Wettstein: Dietrich Buxtehude: (1637-1707), Bibliographie zu seinem Leben und Werk, München 1989.
A. Edler (Hrsg.):Dietrich Buxtehude und die europäische Musik seiner Zeit, 1990.
M. Belotti: Die freien Orgelwerke Dieterich Buxtehudes, 1997.
작품목록: G. Karstädt: Thematisch-systematisches Verzeichnis der musikalischen Werke von Dietrich Buxtehude, 1974, 개정 1985(BuxWV).

등록일자: 2006-01-04
장동욱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북스테후데, 디트리히(Buxtehude, Dietrich, 1637경-1707)

- 1637년경 독일의 올데슬로에(Oldesloe) 또는 헬싱보리(Helsingborg)에서 출생.
- 약 32년간(1641/42경-1671) 헬싱괴르(Helsingör)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한 아버지(Johann B.)로부터 첫 음악수업을 받음. 
- 1657년부터 헬싱보리에서, 그리고 1660년부터는 헬싱괴르의 마리아교회(Marienkirche)에서 오르가니스트로서 활동함. 
- 1668년에는 툰더(F. Tunder)의 후임으로 뤼벡(Lübeck)의 마리아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되어 평생 봉직함. 
- 1668년 8월에는 전임자인 툰더의 딸과 결혼하여, 7명의 딸을 둠.
- 1673년부터는 툰더가 1646년부터 실시했던 ‘저녁음악회’(Abendmusik)를 이어받아, 평일에 열렸던 것을 오후예배 후로 옮기고, 1년에 5회 개최하는 것으로 변경함. 
- 1678년부터는 ‘저녁음악회’에서 극적으로 구성된 교회음악도 연주됨. 
- 1707년 5월 9일 뤼벡(Lübeck)에서 사망. 그의 오르가니스트 후임에는 사위인 쉬퍼덱커(J. C. Schieferdecker)가 임명됨.

  북스테후데는 자신을 ‘뤼벡의 오르가니스트’로 기록할 정도로 오르가니스트라는 의식이 강했으며, 실제로 그의 동시대인들로부터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로 평가되었다. 젊은 바흐도 그에게서 오르간을 배우고자 한때 오르가니스트로 있던 아른슈타트(Arnstadt)에서 뤼벡까지 도보로 여행할 정도였다(1705년). 비록 사제 관계를 맺지 못했지만 북스테후데가 바흐에게 끼친 영향은 대단하여, 바흐의 작품 곳곳에 그의 영향이 보인다. 바흐가 북스테후데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는 슈피타(P. Spitta)가 그의 『바흐 전기』(Johann Sebastian Bach, 1873)의 제1권에서 북스테후데의 오르간음악에 대한 장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북독일악파를 대표하는 북스테후데의 오르간음악은 판타지적이며, 화성적으로 대담한 형태를 띠었는데, 이것은 특히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프렐류드와 코랄판타지들에서 잘 나타난다. 오르간음악과 관련하여 그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사람으로는 우선 자신의 작품인 ≪아폴로의 헥사코드≫(Hexachordum Apollonis, 1699)를 북스테후데에게 헌정한 파헬벨(Pachelbel)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북스테후데와 절친했던 함부르크의 오르가니스트 라인켄(J. A. Reincken)과 그리고 나름대로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는 베른하르트(Chr. Bernhard)와 베크만(M. Weckmann), 그리고 타일레(J. Theile)를 들 수 있다. 그가 끼친 영향은 그의 제자인 브룬스(N. Bruhns)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오르간음악과는 달리 성악은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영향을 많이 보여준다. 북스테후데의 오르간작품은 발터(J. G. Walther)의 수서본을 통해 우리에게 일부 전해졌으며, 성악곡은 그와 친분관계에 있던 스톡홀름 가문의 구스타프 뒤벤(G. Düben)의 모음집에 전해온다. 북스테후데의 작품은 카르슈테트(G. Karstädt)에 의해 주제별로 분류되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종교적 성악곡: BuxWV 1-124; 소실된 성악곡: BuxWV 125-135; 기악곡: BuxWV 136-273; 소실된 기악곡: BuxWV 251, 274; 미완성 작품: BuxWV 16, 154, 216, 270; 불확실하거나 잘못 간주된 작품: BuxWV Ahn. 1-13. 
  북스테후데의 성악작품들(BuxWV 1-124)은 폭넓은 양식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즉, 짧은 기악 리토르넬로를 동반한 솔로적 ‘아리아’가 있는가 하면 옛 교회 콘체르토 방식의 다성부적인 악곡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앙상블악곡이 솔로단락이나 리토르넬로와 교체되는 보다 커다란 칸타타 작품도 있다. 이 중에는 심지어 7부분으로 이루어진, 그리고 풍부한 내면적 표현을 통해 경건주의적 영향까지 보여주는 연곡적 칸타타 ≪고난 받으신 주님의 지체≫(Membra Jesu nostri, BuxWV 75)도 있다. 이 칸타타는 그가 쓴 유일한 라틴어 칸타타로, 다른 교회칸타타는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의 성악작품은 순수한 현악편성에 기초하는 반면, 몇 개의 작품은 화려하고 장황한 기악편성에 기초한다. 6개의 합창단과 6개의 반주그룹으로 이루어진 모테트 ≪도미니움≫(Dominum, BuxWV 113)이 그 예이다(이 6그룹은 마리아교회의 이층 골마루구조에 맞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화려하며 과시적인 합창음악과 선율적인 아리아, 그리고 단순한 코랄칸타타들은 대부분 폭넓은 일반 청중을 위해 작곡된 것들이다. 반면에 작곡적 섬세함을 즐길 줄 알았던 ‘식자’들을 위해 작곡된 성악작품도 다수 있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매우 복잡한 대위법적인 코랄음악인 ≪평안과 즐거움으로 내가 그곳에 가나니≫(Mit Fried und Freud ich fahr dahin, BuxWV 76, Nr.1)와 고전풍의 ≪미사 알라 브레비스≫(Missa alla brevis, BuxWV 114)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외에도 성악음악으로는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묘사한 대화체 작품인 ≪주여, 내가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Herr, ich lasse dich nicht, BuxWV 36)와 역시 대화체 작품인 ≪나의 친구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Wo ist doch mein Freund geblieben, BuxWV 111)가 있다. 이것들은 당시 1678년부터 ‘저녁음악회’에서 연주되었던 극적 종교음악이 어떠한 음악양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인가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당시 심하게 편곡된 형태로 “최후의 심판”이란 표제로 알려졌던 오라토리오 ≪깨어 있어라! 싸움을 위해≫(Wachet! Euch zum Streit, BuxWV supl. 3)는 현재 그 진품성을 의심받고 있다. 북스테후데가 비록 오르가니스트로서 성악작품을 작곡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이처럼 많은 성악곡을 작곡한 것은 당시의 필요 때문으로 보인다. 즉, 교회적인 음악, 특히 예전 외적인 교회음악이 당시 너무나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이것의 작곡을 통해 자신의 음악활동영역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부수적인 수입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스테후데의 기악음악(BuxWV 136-273)은 크게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BuxWV 136-250)과 실내악 작품(BuxWV 252-273)으로 나누어진다.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들은 프렐류드(ByxWV 136-158, 162-165)와 오스티나토 작품(BuxWV 159-161), 칸초네(BuxWV 166-176, 225), 코랄편곡(BuxWV 177-224), 모음곡(BuxWV 226-244), 세속변주곡(BuxWV 245-250)으로 세분화된다. 
  프렐류드에서 북스테후데는 흔히 바흐의 직접적인 선구자로 평가되는데, 이는 무엇보다 슈피타가 북스테후데의 오르간작품을 출판할 때 많은 양의 코랄과 관련 없는 작품들에 바흐를 모델로 하여 ‘프렐류드와 푸가’라는 표제를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프렐류드’라고 이름 붙여진 북스테후데의 작품들(일부는 ‘Toccata’ 또는 ‘praeamblum’이라는 표제가 붙여짐)은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북스테후데의 작품들이 자유로운 단락과 푸가적 단락의 다양한 빈번한 교체로 이루어진 것에서 증명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프렐류드 g단조≫(BuxWV 149)인데, 이곳에서는 처음 몇 마디의 판타지적인 배회 후에 오스티나토적 베이스에 기초한 샤콘느가 뒤따르고, 이어서 푸가가 느린 음표로 나타난 후, 계속저음 스타일의 단락으로 넘어간다. 이어지는 마지막 단락에서는 앞서간 푸가와 테마적으로 관련된 3박자의 새로운 푸가가 나타나 전개되다가, 마지막엔 처음의 판타지적인 스타일로 종결된다.
3개의 오스티나토 작품(‘Ciaconna’ 또는 ‘Passacaglia’라고 표제가 붙여짐)은 북스테후데의 가장 유명한 오르간작품들로서, 브람스(J. Brahms)도 이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파사칼리아 d단조≫(BuxWV 161)인데, 이것은 4마디의 주제가 페달에 의해 총 18번 반복되는 작품이다(아래의 악보에서 파란색은 오스티나토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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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는 특이하게도 전조와 관련된 4부분으로 나누어진다(d단조-F장조-a단조-d단조). 오스티나토적 베이스는 한 독립적인 장르 외에도 프렐류드의 한 부분(샤콘느 부분)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위에서 언급된 BuxWV 149와 BuxWV 137, 148이 그 예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샤콘느 부분이 다양한 위치에 자리하는데, BuxWV 149에서는 샤콘느가 푸가보다 앞서 나오는 반면, BuxWV 137이나 148에서는 푸가보다 뒤에 나온다.
  칸초나(‘Canzona’, ‘Canzonetta’, 또는 ‘Fuga’라고 표제가 붙여짐)는 건반악기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엄격한 대위법 양식으로 일관하는 작품이다. 그것은 대부분 여러 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들 단락은 그때그때마다 상이한 박자에 기초한 상이한 테마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푸가식으로 전개시킨다. 칸초나 C장조에서만은 즉흥적인 성격의 연결구가 이들 푸가적 단락을 하나로 이어준다.
  북스테후데의 코랄편곡은 총 47곡에 이른다. 이는 코랄을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했느냐에 따라 3개의 그룹, 즉 코랄전주곡, 코랄변주곡, 코랄판타지로 세분화된다. 코랄전주곡은 3그룹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데, 뤼벡 교회의 회중찬송을 위해서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코랄변주곡은 대부분 2-4변주로 이루어진다.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을≫(Auf meinen lieben Gott, BuxWV 179)은 특이하게도 모음곡처럼 두블과 사라방드, 쿠랑트, 지그로 편곡되어 있다. 코랄판타지에서는 코랄 선율이 하나의 통일된 방법으로 편곡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프레이즈별로 다르게 처리되는데, 대표적인 예로서는 ≪찬송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여≫(Gelobet seist du, Jesu Christ, BuxWV 188)와 ≪얼마나 새벽별이 아름답게 빛나는가≫(Wie schön leuchtet der Morgenstern, BuxWV 223)를 들 수 있다. 예로서 BuxWV 223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제1부에서는 코랄 프레이즈가 4개의 단락 안에서 상이한 박자의 상이한 성부에 기초해 다양하게 가공되는 반면, 제2부에서는 12/8박자에 기초해 각각 푸가토로 만들어진다.
  19개의 모음곡(BuxWV 226-244)은 프랑스 음악의 영향을 보여주어 거의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의 일반적인 순서로 되어 있고, 가끔 두블이 첨가된다. 이로 인해 다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판타지 스타일’(Stylus phantasticus)과는 구분된다. 세속 변주곡(BuxWV 245-250)으로는 총 6개의 작품이 있는데, 이 중에서 32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카프리치오≫(La capricciosa, BuxWV 250)가 가장 유명하다. 다른 변주곡들은 3-12개의 변주로 이루어졌다.
  북스테후데의 실내악(BuxWV 252-273)은 주로 바이올린과 비올라 다 감바, 그리고 계속저음을 위한 트리오소나타로 쓰여졌다. 이 중에서 각각 7개의 작품으로 묶여진 BuxWV 252-258(1694년 추정)과 BuxWV 259-265(1696)는 그가 살아있을 때 함부르크(Hamburg)에서 인쇄된 것이다. 나머지 소나타(BuxWV 266-273)는 필사본으로 전해진다. BuxWV 267과 268에서는 바이올린이 사용되지 않으며(나머지 작품에는 한 대나 두 대의 바이올린이 사용됨), BuxWV 270에서는 유일하게도 비올라 다 감바가 사용되지 않는다. BuxWV 274는 표제에 따르면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식탁음악, Tafelmusik)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작곡되었으나 소실되었다. BuxWV 268은 진품성에서 의심받고 있다.

참고문헌

Geck, M. Die Vokalmusik Dietrich Buxtehudes und der frühe Pietismus. 1965.
Sorensen, S. Das Buxtehudebild im Wandel der Zeiten. 1972.
Defant, C. Kammermusik und Stylus phantasticus, Studien zu Dietrich Buxtehudes Triosonaten. 1985.
Snyder, K. J. Dietrich Buxtehude Organist in Lübeck. New York, 1987. 
Edler, A. und Krummacher, Fr.(Hrsg). Dietrich Buxtehude und die europäische Musik seiner Zeit. Kassel, 1990.
Belotti, M. Die freien Orgelwerke Dietrich Buxtehudes. 1997.

등록일자: 2010.1.22.
[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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