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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거룩하신 하나님(통10) [Holy, Holy, Holy, Lord, God of hosts]
43회
거룩하신 하나님(새77 통10)
Holy, Holy, Holy, Lord, God of hosts

작사 : 제임스 몽고메리(James Montgomery, 1771~1854)
작곡 : 야콥 블루멘탈(Jacob Blumenthal, 1829~1908)

“거룩하신 하나님” 외에도 “내 구원이신 주(God is my Stromg Salvation)”, “겟세마네 동산에(Go to Dark Gethsemane)”, “나 쉴 곳 어딘가(O Where Shall Rest Be Found)”, “내 기도는 영의 호소(Prayer is the Soul\\\\\\'s Sincere Desire)”, “내가 주의 성전에(To thy Temple I Repair)” 등 은혜롭고 영감 넘치는 찬송시들을 쓴 제임스 몽고메리는 1771년 11월 14일 스코틀랜드의 어빈(Irvine)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모라비아파 교회의 목사였다. 몽고메리가 여섯 살(1777년)이었을 때에 그의 부모들은 그를 요크셔 주에 있는 풀네크(Fulneck)라는 곳의 모라비안 기술학교에 넣어둔 채 서인도의 바바도스라는 섬으로 선교를 떠났다가 현지에서 순교하고 말았다(모라비아 교도에 대해서는 328장을 참조할 것).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버린 몽고메리의 성격은 내성적으로 변했고, 그가 즐기는 것은 찬송가를 몰래 혼자 불러보는 것이었다. 10세 때에 그는 이미 훌륭한 찬송시를 지어냈다. 그가 부모를 여읜 후 머문 모라비안 기술학교는 마치 수도원을 방불케 할 만큼 엄숙하고 엄격한 곳이어서 그의 찬송시의 경건미는 여기서 그 소양이 움튼 것이다.
그의 부친이 그를 어린 나이에 모라비안 기술학교에 보낸 것은 후에 목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으나 몽고메리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고 낙제하여 14세에 퇴교를 당했다. 일시 제빵 공장에 다녔던 그는 16세 때 런던으로 이주했다. 1792년 우연히 신문의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급진당원들의 주간지인 셰필드 레지스터(Sheffield Register)라는 신문이었는데, 몽고메리는 여기에서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문사 주인인 게일즈가 게재한 기사가 필화사건에 휘말리자 게일즈는 영국을 떠나 피신하게 되었고 몽고메리는 이 주간지를 그대로 인수했다. 그 후 31년간 그는 이 신문의 경영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불란서혁명의 여파가 영국에 밀려올까봐 대비하고 있던 영국 정부나 군부, 그리고 귀족들의 부패를 그는 노동자의 편에 서서 신랄히 비판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쉬지 않고 창작활동을 하여 많은 시작을 발표했다. 그러다 1825년에 해외선교, 성서보급, 불우청소년 선도 사업, 인신매매금지 등의 세계적인 문제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신문사 사장직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었다. 1832년에 새로이 들어선 영국 내각은 그에게 종신 왕실연금을 200파운드씩 지불하도록 결의할 만큼 저명한 국가적 인물이 되었다. 말년에 그는 셰필드라는 조그만 도시에 주거를 정하고, 1854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 셰필드시의 묘지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룰 정도로 영국 정부는 그를 추모했다. 그는 10권의 자작시 성가집을 남겼고, 400여개 이상의 찬미가를 썼다. 그의 찬송가는 모라비아 형제단에서 사용하는 모라비아 교회찬송가의 세습적 재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위의 찬송시는 몽고메리가 1832년에 작사하여 회중교회 찬송가집(Congregational Hymn Book, 1836)에 처음 발표한 것이다. 작곡자 블루멘탈은 독일 출신으로 1848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빅토리아 여왕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며, 여러 장르의 곡을 작곡한 인물이다. 위의 찬송가는 그의 곡조를 편곡한 것이다. 곡명인 ‘Blumental’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국찬송가집에서는 위의 찬송가가 개편찬송가(3장)에 처음 수록되었다. 

등록일자: 2010. 2. 4
문영탁/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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