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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이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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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이성천(李成千, 1936-2003)

- 1936년 5월 28일 함경북도 길주에서 출생.

- 부친이 목사인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서 성장함.

- 1952년 전쟁 후 서울로 이주함. - 1955년 3월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함.

- 1955년 4월 가톨릭대학 의학부 예과에 수석 입학함.

- 1959년 본과 2학년 때 건강 악화로 휴학하고 요양생활을 함.

- 1961년 4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작곡전공으로 입학함.

- 1962년 국립국악원 주최 ‘신국악작품공모’에 2등으로 입상함.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1등 으로 입상함.

- 1964년 동아일보사 주최 제4회 전국음악경연대회 작곡부(서양음악) 2등 입상함.

- 1965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함.

- 1965년 공보부 주최 신인음악상 작곡부 1등 입상함.

-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학과(이론전공) 졸업함.

- 1968년 동아일보사 주최 제8회 전국음악경연대회 작곡부(국악) 2등 입상함.

- 1969년과 1971년에 각각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한국문화대상 국악부문 창작상을 수상함.

- 1979-1982년 성신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역임.

- 1982-2001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역임.

- 1985년 KBS국악대상 작곡상 수상함.

- 1991년 한국국악교육학회장에 피선됨.

- 1995년 제10대 국립국악원장에 임명됨.

- 1996년 문화관광부 주최 제15회 세종문화상 수상함.

- 1997년 서울음대 학장에 피선됨.

- 199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됨.

- 2001년 문화관광부 주관 보관문화훈장 수상함.

- 2003년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분과 위원장에 임명됨.

- 2003년 9월 26일 서울에서 사망.


작곡가 이성천의 음악경향은 그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그가 이룩한 국악작곡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세 가지의 물줄기로 형성이 되는데, ‘기독교에서 국악으로’, ‘의학에서 국악으로’, ‘서양음악에서 국악으로’가 그것이다. 이러한 물줄기로 형성된 음악의 바다 속에서 이성천은 국악을 구도자(求道者)의 음악으로, 국악을 인간치유의 음악으로, 국악을 국제적인 음악으로 만들었다. 이성천이 국악계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 국악은 사실상 현대인들에게 외면당하는 특수음악일 뿐이었다. 이성천의 음악을 통하여 국악은 고루한 전통이라는 틀을 탈피하여 보다 넓은 세상과의 접목을 이루게 되었고, 인간을 위한 음악이라는 보다 깊은 철학적 사색을 얻게 되었고, 현대인의 일상에 필요한 음악이 되었다.

이성천의 국악작곡은 국악을 구도자(求道者)의 음악으로 만들었다(‘기독교에서 국악으로’). 이성천이 국악에 입문하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악은 불교나 기타 종교의 음악이라는 인식뿐이었지 기독교의 신앙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기독교 안에서도 국악이나 그 악기들은 불교나 무당종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어 배척을 받았다.

이성천은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어났다. 장로교 계통의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신 그의 부친은 길주의 유일한 교회인 ‘길주교회’의 목사였으므로 그는 기독교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성천은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았고 기독교 음악에 처음으로 국악을 접목시킨 공헌이 있다. 비록 이성천의 전체 작품 중 기독교적 음악은 양도 극히 적고 대표작품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국악의 만남은 그를 통하여 한국 음악계가 얻은 소중한 유산이다. 또한 국악이 제의(祭儀)나 예술 자체만을 위한 음악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구도자적 의미를 얻게 된 것도 이성천의 공헌이다.

이성천의 첫 기독교 작품은 성가곡 ≪시편송가≫, 부활을 노래하는 ≪The Song of Resurrection≫ 등이 있다. 이는 1965년에 만든 것들로 그의 초기 작품이다. 그는 ≪긍휼히 여기소서≫(1981)라는 작품으로 최초의 ‘국악 미사곡’이라는 장을 열기도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성가합창곡으로 ≪엘리엘리≫(1980)와 성가합창과 관현악곡 ≪아름다운 소식≫(1994)이 있다. 이외에도 찬송가를 편곡하여 만든 독주곡 제24번 ≪멀리멀리 갔더니≫(1982), 독주곡 제25번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주제에 의한 변주곡(1986), 독주곡 제44번 ≪참 아름다워라≫(1992),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주제에 의한 대금, 가야금, 장고 3중주곡(1986) 등이 있고 여러 곡의 국악복음성가도 남기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단순한 예술을 넘어서 인간의 정서를 터치하는 영혼의 양약이요 정신적 교화로서의 깊은 철학적이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종교적일뿐만 아니라 상당히 서정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치유라는 의미 아래서 그의 작품은 국악과 서양음악 사이를 아무런 경계 없이 넘나들고 있다. 그는 서양의 가곡이라는 장르를 국악에 도입시켜 새 영역을 개척하였다. 즉 피아노와 관현악으로만 반주하던 가곡에 국악기와 국악적 선율을 가미하고 서정적 분위기의 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그는 소위 ‘서정적인 국악’을 통하여 ‘국악’하면 아예 마음을 닫아버리던 그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하여 국악에 대한 자연스런 수용과 감동을 얻어내고 있다.

이성천은 일반에게 잘 알려진 서정시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최초의 가곡 ≪이야기≫(1966)를 비롯하여 ≪엄마야 누나야≫(1990), ≪사모곡≫(1991), ≪저녁≫(1991), ≪귀뚜라미≫(1992), ≪산딸기≫(1992) 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의 이러한 서정성의 추구는 성악곡의 범위를 넘어 기악곡에 까지 번지고 있다. 그의 가야금 독주곡 제40번은 ≪노천명의 ‘4월의 노래’에 의한 시상(詩想)≫(1991)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와 함께 독주곡 제23번 ≪5월의 노래≫(1989), 독주곡 제56번 ≪강물이 흐르는 풍경≫(1983), 독주곡 제39번 ≪벌거벗긴 서울≫(1994), 독주곡 제43번 ≪철새, 사철나무 밑둥에 둥지 틀다≫(1995), 독주곡 제45번 ≪초원의 집≫(1996), 독주곡 제47번 ≪사슴은 노래한다≫(1996), 독주곡 제48번 ≪봄이 오는 소리≫(1996), 독주곡 제49번 ≪나 하나≫(1998) 등이 있다. 관현악곡에도 ≪국악관현악 반주에 의한 가곡 연곡≫(1988), 합주곡 제6번 ≪저 들판 겨울나무로 가고 싶네≫(1989)가 있다. 그리고 타악기를 위한 모음곡으로 ≪시골풍경≫, ≪장터의 오후≫, ≪엿장수≫, ≪굿거리≫, ≪밤의 소리≫가 있다. 이러한 이성천의 작품들은 모두 서정성을 가진 음악을 통하여 황폐해져 가는 인간의 정서를 치유하고 영혼을 달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다.

이성천은 한편 음악을 통한 인간치유의 길을 해학(諧謔)과 자연친화라는 면에서 찾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하여 ‘국악 하면 계면조’, ‘계면조 하면 슬픈 가락’이라는 선입관을 깨뜨리고 제목의 뉘앙스에서 호기심을 얻게 하며 작품에 나타나는 해학적 분위기를 통하여 인간을 웃게 만들고 편안하게 하고 삶에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의 작품은 제목만 보아서는 전혀 국악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곡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목들은 ‘해학을 통한 인간치유’라는 그의 작곡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당히 당황스럽고 이상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의 작품 중에 해학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것들은, 해금합주곡 ≪쥐구멍에 볕들었어도≫(1990), 21현금을 위한 독주곡 제19번 ≪갯벌 터의 방게 구멍집들≫(1992), 제41번 ≪미꾸라지 논두렁에 빠지다≫(1993), 제39번 7개의 모음곡 ≪발가벗긴 서울≫(1994), 해금 2중주곡 제18번 ≪별로 심각하지도 않은 이야기≫(1993), 해금독주곡 제50번 ≪엄마가 된 아기고양이≫(1997)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성천은 해학과 더불어 자연친화적 안식을 통한 인간치유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얻은 낭만과 소박함이라는 재료를 통하여 인간에게 기쁨과 평안을 선사하고 있고, 작품의 제목을 통하여 벌써 기계문명에 병든 인간을 자연으로 치유하고 있으며, 복잡해진 현대인의 머리를 단순화시키고 안식을 주고 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 중에는 무엇보다도 그의 가야금 독주를 위한 모음곡 『숲속의 이야기』(1977)에 들어있는 20개의 곡들이 있다. 초동, 뻐꾸기, 왕벌, 거북이, 토끼, 물고기, 닭, 원숭이, 철새, 금붕어, 미꾸라지, 사슴, 요정, 오리, 메아리, 우렁이, 달팽이. 빗방울 등의 관찰을 통해 얻어낸 곡들은 모두 자연친화적 제목과 분위기의 작품들로서 듣는 이의 마음에 평안과 웃음을 통한 정서적 치유를 주고 있다.

이러한 음악을 통한 인간 정서의 순화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이성천의 작품 세계는 소박함과 해학성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음악으로 그 영역을 넓혀 가며 교육적인 면을 추구하게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적 음악 작품들은 이성천의 음악세계에서 무시 못 할 중요한 부분이다.

이성천은 1990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연속하여 어린이의 정서 순화와 교육을 위한 24곡의 동요를 작곡하였는데 그 밖의 동요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무용곡 ≪호동왕자≫(1973), ≪별의 전설≫(1973)을 작곡하였다. 그는 1975년에 판소리 인형극 ≪허생전≫을 발표하였고, ≪청소년을 위한 국악관현악 입문≫(1994)을 작곡하였다. 이성천은 1977년에 대표적 가야금 독주곡 모음곡집 『숲속의 이야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대표적 모음곡집인 『놀이터』를 같이 발표하였는데, 그 속에는 ≪정경≫, ≪미끄럼≫, ≪공기놀이≫, ≪소나기≫ 등의 동심어린 곡들이 들어있다. 이처럼 인간 치유를 위한 이성천의 음악 정신은 서정성을 지향했고 해학적이고 자연친화적이 되었으며 동심(童心)을 위한 작품을 낳게 하였다.

이성천의 교육적인 음악추구는 작곡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기는 학술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는 90편이 넘는 크고 작은 논문을 남기고 있으며, 저서, 공저, 번역서, 작곡집을 포함하여 약 30권의 책을 집필하는 놀라운 저술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의 저서 중에 특별히 한국전통음악의 미학론이라 할 수 있는 『한국•한국인•한국음악』(풍남, 1997)과 최초의 전통음악 창작방법론으로써 사후 제자들에 의해 발간된 『한국전통음악형성론』(민속원, 2004)은 그의 음악사상과 전통음악에 대한 심오하고도 체계적인 이론과 학설이 담겨 있어 그의 학자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국악사(國樂史)』(삼호출판사, 1974), 『국악개론-알기 쉬운 국악을 해결합니다』(풍남, 1999) 등의 책들은 귀중한 유산이다. 이성천은 국립국악원 원장과 한국국악학회 회장을 겸직할 때 『한국음악 창작곡 작품목록집』(풍남, 1997)을 발행하여 그 동안 흩어져 있던 국악창작품을 한곳에 모으는 공헌도 하였다. 그의 저서에는 국악뿐만 아니라 음악의 기초 교육을 위한 『음악의 기본연습』, 『음악통론과 그 실습』, 『시창과 청음 연습 IㆍII』등의 책도 포함되어있다. 그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그의 음악을 설명하고 교육하고 변호할 줄 아는 이론가요 교육가요 학자였다.

또한 이성천의 국악작곡은 국악을 국제적인 음악으로 만들었다(‘서양음악에서 국악으로’). 그의 음악은 서양음악과 국악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그를 국악작곡가라고 정의 하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서양음악에서 국악으로 입문한 사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동아일보사 주최 전국음악경연대회(동아콩쿨) 입상 경력만 보아도 이성천은 1964년에 피아노소나타를 써서 서양작곡부문에 먼저 입상을 하였고, 4년 뒤 1968년에 비로소 국악작곡부문에 입상을 하게 된다. 또한 이성천은 활동 초기에 양악기만을 위한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는데, ≪Piano Piece≫ I.(1963) II.(1964), ≪Piano Trio for Bariton and Oboe≫(1964),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The Suite for Piano, 1965) 등이 있다.

이성천은 굳이 국악과 양악을 구분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교차적 작품도 많이 썼다. 그는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1965)을 써서 당시 공보부가 주최한 신인음악상(작곡부 1등)에 입상하였다. 그런데 이성천은 이 작품을 모체로 하여 1년 뒤에 가야금을 위한 모음곡 『놀이터』(1966)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에서 최초로 가야금 연주에 있어서 농현(弄絃)을 담당하던 왼손이 오른손과 똑같이 가락을 연주하는데 동원되었으며 이는 피아노의 기법이 가야금에 도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악과 양악의 담을 허는 이성천의 실험 정신은 첼로를 위한 4개의 모음곡 ≪북청사자놀이≫(1992)를 만들어 냈는데 서양악기로 우리 문화를 표현하려는 의지의 결과로써 가치가 있다. 이와 비슷한 작품들은 플루트를 위한 ≪가락≫(1967),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적 무곡 시나위≫(1971) 등이 있다. 이성천은 국악기와 양악기의 혼합형태의 작품도 많이 남겼는데 그 대표적인 곡은 플루트, 클라리넷, 21현금을 위한 ≪함경도 풍구소리≫(1994), 훈ㆍ어ㆍ클라리넷의 3중주 ≪부조리≫(1967) 등이 있다. 또한 그의 성악 작품에서도 국악과 양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들이 있는데 합창과 국악 관현악곡 ≪추계 20년≫(1994) 등이 그것이다.

이성천은 서양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국악에 인용하여 작품을 쓴 경향도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을 위한 국악관현악 입문≫(1994)이다. 이는 영국 작곡가 브리튼(B. Britten)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브리튼은 퍼셀(H. Purcell)의 주제를 사용하였고 이성천은 전통 민요 ≪새야 새야≫ 주제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의 관현악 작품 ≪나의 조국≫(1985)은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B. Smetana)의 ≪나의 조국≫(Ma’ Vlast)과 핀란드 출신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Finlandia)에서 착상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천은 그밖에 서양음악의 중주곡, 전주곡, 변주곡, 협주곡, 합주곡, 모음곡, 교향시(관현시), 연가곡, 가곡 등의 개념을 국악에 최초로 도입하여 국제적인 국악의 틀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단선율의 음악에 화성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불협화음과 서양적 리듬 패턴과 악기 연주법을 차용하여 국악창작의 폭을 넓혔다.

이성천은 국악의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가장 고질적인 한계였던 악기의 음역과 음정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의 대표적이고 중요한 업적은 가야금 악기 개량 작업이다. 그는 대표적인 국악기인 가야금이 12줄로는 국제적인 악기가 될 수 없고 국제적인 음악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고 그 음역을 넓히며 음정을 서양의 12음에 맞추어서 21현금으로 개량하였다. 이성천은 이 개량 가야금을 위한 많은 곡을 작곡하였는데 ≪바다≫(1987)라는 이름의 21현금을 위한 작곡집을 내기도 하였다.

이성천은 가야금뿐만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던 거문고의 개량을 시도하면서 개량 거문고를 위한 작품인 독주곡 제38번 ≪맛뵈기≫(1990)를 작곡하였다.

이성천은 창작에 있어서 한 장르에 머무르며 청중의 인기에 영합하는데 안주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가야금 음악이었다. 그는 최초의 가야금을 위한 곡을 창작하였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양적으로도 가장 많은 가야금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험정신은 가야금을 넘어서 국악의 모든 악기와 모든 장르를 위한 작품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 국악을 서양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격상시켰다. 이성천의 노력으로 인하여 국악은 더 이상 서양음악과 별개의 특수하고 고루한 음악이 아닌 자연과 인간을 노래하는 보통의 생활음악이 되었다. 그를 통하여 국악은 현대인들에게 친숙하게 되었고 인간의 정서와 내면의 문제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인간을 위한 음악’으로 의미 전환되었다.

이성천은 국악의 세계화와 현대화를 이루기 위하여 전통음악의 뿌리에 더 집착한 작곡가이다. 그는 국악이 더 넓고 높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전통음악의 깊은 샘으로 더 뻗어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전통음악으로부터 창작의 모티브를 얻고 방법론을 터득하여 새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국악에 늦게 입문하였기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전통음악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90편의 논문들과 30권의 저서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그의 유작인 『한국전통음악형성론』(2004)은 전통음악의 주요 작품들의 내용을 창작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악(正樂)의 창작 정신과 방법론을 후대에 알렸다는 점에서 대단한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성천은 다작(多作)의 작곡가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 중에 전통음악의 정신을 오늘날의 정서에 맞게 재탄생시킨 것들만을 추려도 수적으로 다른 작곡가와 비교하여 월등히 많다. 전통음악에 뿌리를 둔 작품을 만드는 그의 정신은 저서 『한국•한국인•한국음악』에서의 그의 설명대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이었다. 즉 그의 작품은 전통음악에 근거하나 그 형식과 선법과 틀에 있어서 같지 않은 것이다. 전통음악적인 작품을 쓴다고 하면서 그 형식과 음계와 틀을 그대로 사용함으로 옛 음악의 레퍼토리를 늘리는 식의 작품은 이성천에게 있어서 창작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후자의 길을 택했다면 그의 작품은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선호도를 높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료 교수인 이재숙의 말대로 ‘새로운 변경(邊境)을 끝없이 모색하는 작곡가’로서 국악창작이라는 불모지를 개척하고 많은 열매를 거둔 작곡가이다.

이성천의 곡들 중에 ≪청성곡 주제에 의한 변주곡≫(1962), ≪세악을 위한 합주곡≫(1963), 피리와 타악기를 위한 합주곡 ≪점과 직선≫(1967), 관을 위한 실내합주곡 ≪정(靜)의 아악≫(1969) 등은 거의 초기의 작품으로서, 그의 창작 정신이 전통음악에 뿌리를 둔 것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작품들 중 가장 수작(秀作)은 합주곡 ≪타령에 의한 전주곡≫(1986)이다. 이성천은 전통음악의 확장을 위하여 그동안 연주하지 않고 박물관에 있던 악기들을 위한 작곡과 편곡을 하였고 악기 개량에도 힘썼다. 향비파를 위한 ≪우조 가락도드리≫(1990), 당비파를 위한 노래 ≪만대엽≫, 월금을 위한 편곡 ≪황하청≫(1990) 등 그의 후기에는 정악의 작품들로부터 죽어있는 악기의 부활을 위해 수많은 곡들을 만들었다. 또한 중주곡 제21번은 ≪한범수류에 의한 해금산조 3중주≫(1995)인데 이와 같이 산조를 가지고 합주곡을 만든 것에는 성금련 가야금 산조, 김죽파 가야금 산조에 의한 합주곡들도 있다.

사람들은 이성천을 흔히 사슴의 이미지를 닮은 사람으로 비유한다. 그의 작품에도 사슴과 관련된 것들이 여럿 있다. 그의 대표적 모음곡 『숲속의 이야기』 중에는 ≪사슴의 죽음≫이라는 곡이 있다. 가곡에도 노천명의 시에 붙인 ≪사슴≫(1975)이 있고, 해금 독주곡 ≪여치와 달과 사슴≫(1998), 독주곡 제47번 ≪사슴은 노래한다≫(1996) 등이 있다.

그는 사슴처럼 높이 생각했고 멀리 보았고 조용하고 서정적인 내면을 가졌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듣는 이에게 평안과 기쁨과 쉼을 주고 병들었던 심신을 치유하게 만든다. 사슴처럼 그는 고독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의 고독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듯이 우리는 이성천의 작품이 가진 의미와 깊이를 다 이해할 안목이 없다. 그 삶에서 나온 그의 작품에 대한 온전한 평가와 이해는 미완성의 숙제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이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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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통음악의 창작방법에 관한 연구(1).” 『연세음악연구』 제2집, 서울: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음악연구소, 1992.

. “중국교포의 음악교육.” 『중앙음악연구』 제3집, 서울: 중앙음악연구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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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hs, Curt(이성천 역). 『비교음악학』(Comparative Musicology). 서울: 수문당, 1991.

한국예술연구소 편.『한국작곡가사전』.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시공사, 1999.

한국국악교육학회 편.『한국음악 창작곡 작품목록집』. 서울: 풍남, 1997.


등록일자: 20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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