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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론용어
번진음/번짐/튄음/튐/뿌려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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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저자 : 홍정수

등록일자 : 2013-01-14


번진음/번짐/튄음/튐/뿌려진 음


번진음은 한국 양악 작곡가들의 음악에서 다음 두 가지 내용을 갖는다:


1)일정한 음계에 속한 음들에 인접하여 2도관계를 이루거나(예1),

2)긴 음과 인접하여 2도관계를 이루는 음들이다(예2).


이 두 가지 경우 이외에도 중요한 음이라 생각되는 음들 주변에 짧고 가볍게 나타나는 2도음정은 모두 번짐음이라 불릴 수 있다. 이것은 자체로 근원적인 독립체가 아니고, 더 본래적인 어떤 음으로부터 번져 나왔다. 용어 번진음은 한국 전통음악의 시김새적 특징을 응용한 음악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이론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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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진음은 예1과 2에서 사각형 음영으로 표시되어 있다. 번진음은 단2도, 또는 장2도일 수 있다. 전자는 반번진음, 후자는 온번진음이라 한다. 이 두 가지보다 조금 더 드물게 나타나는 더번진음(증2도 또는 단3도)도 있다. 번진음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 번진선율을 이루기도 한다. 번진음 개념에는 ‘어떤 본래적 음이 변형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나운영의 음악(예1)에서 첼로는 A D G의 새야화현을 울리는데, 이것이 본래의 음계에 속한 음들이다. 짧은 B♭ E♭ A♭은 앞의 음들이 번진 것이며, 그 번지는 상태가 단2도 위로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기에 역시 새야화현을 이룬다. 바이올린은 같은 음 관계를 5도 위로 연주한다.

윤이상의 음악(예2)에는 다른 질서가 있다. 거기에서는 번진음이 폴리포니적으로 형성된다다. 번진음은 다른 두 성부에 의해 시차를 두고 하강진행하거나(마디4-5), 상행진행한다(마디6-8). 그리고 마디8에서는 C가 번진음이었다가 본래의 음이 된다. 이는 번진음이 가변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무조적으로 형성된 윤이상의 음악이 긴 음만 읽으면 마디7까지 A, C, E로 된 삼화음의 음들인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긴 음들이 항상 이런 식으로 명확한 조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긴 음들은 윤이상의 음악에서 상당한 정도로 조성적이거나 조성적인 것의 변형이다.

예1과 2에서 보듯이 번진음은 한국작곡가들이 조성적인 것을 이탈하려고 할 때 조성의 뼈대를 포기하지 않고, 현대적인 반음계(번진음)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기법이다. 나운영의 예는 그가 처음으로 12음기법을 시도한 곡들 중 하나였고, 윤이상의 예는 그가 이미 무조성으로 옮겨간 이후의 작품이다.

윤이상의 예에서는 번진음들이 직선 이음줄로 본래적 음들에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 음으로부터 미끄러져 연주하라는 표시인데, 한국전통음악의 시김새적 연주에서 흔히 보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직선 이음줄은 2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음정에서도 나타난다. 즉 2도 이상의 음정에서도 시김새적 연결상태가 작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김새적 연결은 어떠한 음정에서도 가능하다. 윤이상의 예에서 직선 이음줄이 아닌, 보편적 이음줄로 이어진 것도 시김새적인 상관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상성부 마디2-4에서 세 차례 나타나는 F♯ 음들은 비교적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더 긴 A에 붙어있는 시김새들인데, 이는 실제로 더번진음에 해당한다.


아래의 이영조 음악(예3)은 2도의 번진음과 그 이상의 시김새적 음정들에 관해 설명한다. 그 음정들이 화성적으로 나타났을 때 달라지는 용어도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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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3 이영조, ‘혼자놀이’,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 마디 23-30.


예3에서 번진음들에는 ‘번’자 붙어 있다. 번진음이 화성적으로 동시에 울릴 때는 번짐이라 칭한다. 번짐은 예2에서 둥근 음영으로 표시된 하성부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이 하성부의 번진음 G♯에 완전5도 간격의C♯가 덧붙여져 화성적인 내용을 보강했는데, 더 1차적이고 중요한 것은 단2도 간격의 번진음 G♯이다.

번짐에서도 반음번짐과 온음번짐이 있다. 예를 들어 C와 C♯이 같이 울리면 반음번짐, C와 D가 같이 울리면 온음번짐이다. 번짐에서는 2도 이상의 음들도 함께 겹쳐 울리는데, 예를 들어 C, D, E가 같이 울리면 전음계적 장4도번짐이다. 반면 C, C♯, D, D♯, E, F가 함께 울리면 반음계적 완전4도번짐이다. 이런 방식으로 번짐은 번진음과 다르게 음정이 2도에 한정되지 않고, ―예를 들어 5, 6, 7, 8, 9도 등으로― 얼마든지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2도음정을 사용하는 것이다.

중심되는 음으로부터 3도 이상으로 벌어지는 음은 튄음이라 한다. 예3에서는 “튄” 자가 붙어 있다. 튄음들도 장식적으로 짧게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튄음을 번진음의 확대로 이해하는 것은 시김새적 사고에 부합한다. 튄음의 관계가 화성적으로 나타날 경우는 튐이 된다. 중심되는 음에 붙어 있는 많은 수의 장식적 음들은 뿌린음들이라한다. 예3에서 “뿌” 자가 붙여진 음영진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음들의 길이가 짧고 많아야 “뿌려진” 느낌을 준다.


번진음(튄음), 튄음(튐), 뿌린음들은 모두 붓글씨(또는 수묵화) 기법과 관계 있는 용어들이다. 시김새 음악을 붓글씨에 비유한 전통은 윤이상으로부터 시작했다( Gespräch mit Isang Yun,→Berlin Confrontation Künstler in Berlin, Ford Foundation, Berlin, 1965, 68-69쪽).

그는 한국 음악의 음진행을 “붓글씨의 필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신인선은 ‘농담’(濃淡)이라는 수묵화 용어로 윤이상의 음향음악에서 소리가 더 짙고 옅게 형성되는 것을 표현한다( 신인선, “윤이상 2”, ≪음악과 민족≫ 30호, 2005, 131쪽)

그리고 필자는 ‘번짐’(번진음), ‘튐’(튄음), ‘뿌림음’이라는 붓글씨의 특징을 시김새 음악에 적용시켰는데, 그 중 대표적 용어가 번진음(번짐)이다. 시김새의 여러 음정들 중 2도 간격의 번진음은 한국 작곡가들의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3도 이상이 되면 더 쉽게 조성적인 틀이 드러난다. 현대적인 것을 의도한 작곡가들은 그러한 음정을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조금 다른 표현으로 번진음과 비슷한 용어를 사용했던 사람으로는 작곡가 나운영을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10음기법”을 논하면서 10개 음들을 두 가지로 나눈다( 나운영, ≪현대화성론≫, 세광음악출판사, 1982. 153쪽).

하나는 줄기가 된다는 의미로 “간음”(幹音)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앞의 간음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의미로 “파생음”(派生音)이라고 했다. 전자는 아래의 예4에서 C, D, E, G, A이고, 후자는 C♯, D♯, F, G♯, B이다(아래 예4에서 ‘가’). 변화음들은 본질음에 반음을 올린 방식으로 얻어진다. 마지막 음 A는 반음 올려지지 않고, 온음 올려져 B가 되는 예외가 있지만, 파생음이 더 근원적인 음으로부터 온다는 기본에는 변화가 없다. ‘나-1’과 ‘나-2’는 각각 화성적으로 뭉쳐진 ‘간음’과 ‘파생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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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4 나운영의 ‘간음’과 ‘파생음’


윤이상의 언급에서는 번진음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그 대신 그가 사용한 용어 “중심음”(Hauptton)과 나운영의 “간음”은 서로 유사하다. 이 음은 번짐을 위해 있는 긴 길이의 것이다. 윤이상 음악의 현대성은 “중심음”이 아니라, 그가 사용한 용어와는 다르게 번진음(번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운영과 윤이상의 음악이 서로 다른 울림을 가지고 있지만, 이론적 착상은 서로 유사하다. 이는 이 두 사람에게서만 있는 특징이 아니라, 현대적이고자 했던 한국 작곡가들의 공통된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전통음악적인 것과 서양의 20세기 현대음악적인 것도 살리는 방편으로 음들을 번지게 했다. 번져진 음들은 더 전통적 성향의 것이었다.


참고문헌:

홍정수, “문화혼합시대의 음악연구: 이영조 음악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한독음악학회 창립20주년 공동학술대회 논문집》, 2010. 15-43쪽.

홍정수, 지형주, 김지은, 서혜라, 《이영조 음악》, 도서출판 태성, 2012, 25-52쪽 또는 48-52쪽.

나운영, ≪현대화성론≫, 세광음악출판사, 1982.

신인선, “윤이상 2”, ≪음악과 민족≫ 30호, 2005,

Gespräch mit Isang Yun,→Berlin Confrontation Künstler in Berlin, Ford Foundation, Berlin,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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