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음악사
낭만주의, 19세기 [romanticism, Romantik]
15회
오희숙
저자: 오희숙
등록일자 : 초기자료

낭만주의/19세기 음악 (영. romanticism, 도. Romantik)

1. 개념 

‘낭만주의’(도, Romantik) 이라는 용어는 시와 소설(Roman)을 가리켰던 고대 불어 romance로부터 유래하였다. 이 용어는 17/18세기의 문학에서는 “소설적” ·“동화적” · “환상적인” 것을 의미했으며, 계몽주의 시대에는 특히 합리적인 것에 대립되는 “감정적” 또는 “감상적”인 것을  뜻하였다. 그 이후에 낭만주의는 독일문학에서 박켄로더(Wackenroder), 티크(Tieck), 노발리스(Novalis), 슐레겔(Schlegel)형제, 브렌타노(Brentano) 등에 의해 일어났고, 음악을 중시한 독일문학운동(1800-1830)의 명칭이 되었다. 

“낭만적”(romantisch)이라는 말이 음악에 사용된 것은 호프만의 베토벤 비평(1810)에서 이다. 이 용어는 주로 비엔나 고전주의 음악을 위해 사용된 형용사였다. 이 말은 시대를 지칭하기 보다는 예술의 본질적 특징을 뜻하는 것이었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음악에서도 낭만주의라는 용어는 한편으로는 정신적 입장과 음악적 어법을,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예술양식의 지배했던, 슈베르트에서 R.슈트라우스에 이르는 19세기 전 시대를 지칭한다. 

음악의 낭만주의는 문학의 것보다 20년 이상 늦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문학과 조형 예술에서는 낭만주의가 이미 지나간 후에도 음악에서는 이 사조가 특별히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그 기간은 대략 1820년대(이때는 아직도 후기 고전시대에 해당함)부터 20세기 현대음악이 출현하는 1910년경까지 미친다. 물론 낭만주의란 개념으로 19세기의 다양한 양식의 출현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 4개의 양식단계로 나눌 수 있다. 

2.시기구분   

(1)초기 낭만주의(1800-1830) 

낭만주의 경향은 이미 질풍노도시대의 음악( C. Ph. E. 바하의 판타지)과 비엔나 고전주의 음악(모짜르트의 후기작품) 그리고 특히 베토벤의 중기작품시대 이후 기악음악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낭만주의와 견줄 수 있는 음악의 낭만주의는 호프만의「물의 요정」(Undine, 1816), 슈베르트의 후기 실내악곡들과 마지막 니(b 단조, 1822. C 장조, 1828), 그리고 C. M. 베버의 오페라「마탄의 사수」(1820) 이래 비로소 뚜렷해졌다. 호프만의「물의 요정」은 동화적, 낭만적인 소재들을 제공하였고, 베버의「마탄의 사수」는 최초의 독일 낭만주의의 큰 오페라인데, 민속적 성격, 숲을 배경으로 한 자연적 소재, 미신과 기적 신앙적 내용을 가졌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그의 기악 음악과 함께 당대의 시적인 정신을 완벽하게 표현했다(특히 1822년부터). 

이 시기에 낭만주의 초기의 새로운 기악장르로서 서정적 피아노 소품들이 나타난다. 

주요 작곡가: 호프만(E. T. A. Hoffmann), 슈포어(L. Spohr), 베버(C. M. von Weber), 마르슈너(H. Marschner), 슈베르트(F. Schubert) 

(2)중기 낭만주의(1830-1850) 

낭만주의는 유럽의 운동으로 확산된다. 중심지는 빠리(베를리오즈, 마이어베어, 펠리시앙 다비드, 에르네스트 레이에)가 되어 여러 가지 영향을 다른 나라에 미친다. 베를리오즈는 표현력이 강한 오케스트라 언어로 프랑스 낭만주의를 주도한다. 그의 프로그램적인「환상 교향곡」(1830)은 새 시대 정신을 반영한다. 유럽의 오페라 중심지는 빠리가 되고, 그랑오페라(Grand Opéra)는 그들의 공업기술과 경제적 성공을 거대하고 다양한 무대를 통하여 반영한다(오베르, 롯시니, 마이어베어, 알레비). 

독일의 낭만주의는 슈만의 가곡과 기악작품(특히 피아노곡), 그리고 바그너의 낭만적 오페라(「방황하는 화란인」, 「탄호이저,」 「로엥그린」) 등에서 나타난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 기교, 그리고 리스트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는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동시에 쇼팽은 매혹적 음향, 음악적 상상력, 세련미로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낭만적 고전주의자 멘델스죤은「한여름 밤의 꿈」(1842)에 이어, 성격적 선율과 풍부한 음색으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작품「바이올린협주곡」(op.64, 1844)을 내 놓는다. 프랑스의 그랑 오페라에서는 마이어베어(악마의 로베르, 1831. 청교도,1836), 이태리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나부코」(1842) 등이 나타났다. 

주요 작곡가: 베를리오즈(H. Berlioz ), 멘델스존(F. Mendelssohn Bartholdy), 슈만(R. Schumann), 쇼팽(F. Chopin), 리스트(F. Liszt), 바그너(R. Wagner) 

(3)후기 낭만주의 (1850-1890) 

멘델스죤, 쇼팽, 슈만이 죽은 후에 리스트의 교향시(프렐류드, 1848), 바그너의 음악극과 함께 새 시대가 시작된다. 동시에 더 젊은 세대도 등장한다(프랑크, 브루크너, 브람스). 

이 시기에 보수적 방향(프란츠, 옌센, 브람스)과 현대적 방향(리스트, 바그너, 볼프, 레거, 핏츠너, R. 슈트라우스)이 뚜렷이 분리되고, 브루크너는 이들 중간에 서게 된다. 표제 교향곡, 교향시 등과 같은 표제음악은 리스트, 바그너 등에 의한 “신독일악파”에 의해 발전된다. 형식 미학과 표현 미학, 체칠리아주의, 역사주의, 자연주의, 민족주의들이 공존한다. 

주요작곡가: 리스트, 바그너 브루크너, 브람스, 볼프 

민족주의 양식의 주요 작곡가: 

  러시아: 무소르그스키, 차이코프스키 
  체코슬로바카이: 스메타나, 드보르작, 피비히 
  스칸디나비아: 그리그, 시벨리우스 
  스페인: 알베니츠 
  프랑스: 프랑크, 생상 

(4)세기의 전환기(1890-1914) 

1890년경 푸치니, 말러, 드뷔시, R. 슈트라우스 등은 자신들의 새로운 작품을 가지고 등장하여 갖가지 경향들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다. 상징주의, 인상주의(드뷔시, 라벨, 라흐마니노프)가 나타나고 역사주의에 대립하여 ‘청년양식’(Jugendstil)이 나타난다. 

음악은 이러한 것들을 반영하여 양식적으로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예를 들면 부조니는 처음에 후기 낭만적인 성격(협주곡, 발레, 교향곡)을 보였으나 후에는 쇤베르크의 영향(2번 소나타)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고전적 구조로 돌아갔다(폴리포니 양식의 육성을 위한 5개의 짧은 소곡, 1923, 1번). 

낭만주의의 종말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르다. 그 종말은 쇤베르크의 무조음악 발생(1907/08)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쟁 발발(1914)과 함께 완결된다. 

3.낭만주의의 음악적 특징 

(1) 화성 

낭만주의 후기에는 고전적 화성이 해체되는 지경까지 나아갔다. 전통에서 벗어난 조성들, 좁은 공간에서의 강력한 대조, 인식하기 어려운 경과구들, 복잡한 화성구조, 반음계화, 화음의 반음계적 변화 등은 늦어도 바그너의「트리스탄과 이졸데」(1859)이래 점차로 관련성을 잃은 기능 화성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준다. 긴장을 유발시키는 반음계적 변화화음(증3화음), 감7화음, 여러 겹의 반음계적 계류음들, 가온음화성(메디안틱)의 선호, 완전히 서로 먼 조성의 대조 등이 낭만주의의 특징들이다. 이동반복 테크닉, 종지의 연속, 가온음화성은 음악에 항상 새로운 광채를 부여하고, 반음계적으로 진행하는 선율은 자주 해당 조성을 불투명하게 하는 먼 화성들을 발생시킨다. 19세기 후반기에 나타난 또 다른 새로운 화성들은 각자의 민속적 요소들을 작품에 도입하는 슬라브, 스칸디나비아, 헝가리작곡가들에 의해 초래되었다(스메타나, 드보르샥, 글링카, 챠이콥스키, 가데, 그리그, 시벨리우스, 리스트). 

(2) 멜로디, 리듬 

고전주의에서와 같이 낭만주의 음악에서도 선율은 주도적 역할을 한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핵심을 선율에 두었다. 그는 {송어}(1817)에서  4도, 3도 도약으로 발랄함을, 밤 인사(Gute Nacht)에서는 낙망한 국외자의 마음을 하행적 선율로 표현하였다. 그의 선율은 고전적 단순성, 낭만적 고음, 적절한 표현을 갖추었다. 그는 또 가곡 선율들을 기악 작품에 사용하였다(송어 5중주, 방랑자 판타지,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 등). 

베르디는 그의 오페라「라 트라비아타」(1853)에서 미묘한 심리적 뉘앙스를 질 높은 선율, 표현력이 강한 선율을 통해 표현하였다. 베르디의 선율들은 사람을 사로잡았다. 

브람스는 민요풍의 단순한 선율을 가지고 높은 선율의 질을 추구하였다. 그는 많은 민요선율을 독창, 합창, 중창, 합창을 위해 작, 편곡했다({사랑의 노래},op. 52, 1868/69).    

낭만주의는 처음에 단순한 리듬을 사용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이 경향은 변한다. 주관주의를 긍정하여 개개 작곡가들의 특성을 담은 개인리듬은 19세기 후반기에 나타났다(예: 슈만의 부점, 브람스의 싱코페이션과 헤미올라, 브루크너 리듬). 심리적, 시적 효과는 부점, 싱코페이션, 헤미올라 등을 통해 더 확대 되었다. 민속음악 작곡가들로부터 새로운 리듬 요소들도 나타났다(예: 헝가리의 쾌활한 리듬, 부점, 3연음표). 

(3) 음색 

낭만주의는 자연에 가까운 소리들을 선호하였고, 관악기의 다양하고 풍부한 음색을 애용하였다. 특히 플루트, 클라리넷(샬마이)과 파곳, 숲이나 자연을 연상시키는 -옥타브, 5도, 4도 음정- 호른이 자주 사용되었다(예: 브루크너 4번 심포니의 제시부에 나오는 호른독주). 관악기들은 기술적으로 개조되고 발전되어 반음계, 깨끗한 소리, 보다 빠른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악기 군이 확장되었고, 관현악법이 발전하여 새로운 음향효과가 가능해졌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크게 확대된다(베를리오즈의「죽은 자를 위한 큰 미사」, 바그너의「니벨룽겐」등). 

(4) 장르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전통적 음악형식들을 이어받아 변화·확대시켰고, 또 새로운 내용을 가진 형식들을 제시하였다. 새로운 장르로는 시적인 피아노 소품 · 슈베르트 식의 예술 가곡 · 리스트의 교향시 · 바그너의 음악극 등이다. 또한 여기에 특히 대 규모의 복합형식들(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들)과 소규모의 가요풍의 단순한 형식들(표제음악과 기타 이와 유사한 것들)도 포함된다.  완전히 순수한 음악적 관계를 떠나 새롭고, 비유적이고, 시적이거나 또는 철학적인 개념이 음악에서 탐구되었고, 이에 상응하여 새로운 음악형식들 표제교향곡, 교향시, 프로그램 심포니가 나타났다. 

○민요는 낭만주의자들에게 민족의 건전한 예술적 모체로부터 생성된, 작자 미상의 가사와 선율을 가진 노래를 의미했다. 낭만주의는 민요를 통하여 원시 상태의 것, 성격적인 것, 민속적인 것을 추구했다. 아르님과 브렌타노가 「어린이의 신기한 요술피리」(1806/08)란 가사 모음집을 편 낸 이후 에르크/이르머(1838/1845), 쭉칼말리오(1838/1840), 뵈메(1893)등은 여기에 선율을 붙여 민요 모음집을 편찬했다. 민요들은 민중계층에서 많이 불려졌고 구전 되었다. 첼터(Zelter), 라익햐르트(Reichardt), 네겔리(Nägeli), 질허르(Silcher) 등이 새로운 노래집을 펴냈다. 

○예술가곡은 단순한 장절 민속노래와 분리되어 낭만주의의 중심적인 서정적(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볼프) 성악 장르로 변화되었고 많은 가곡집들이 인쇄되어 보급되었다. 

뢰베(C. Loewe)의「발라드」에서는 장절 구조가 유지되었다. 일관 작곡된 가곡에서는 가사와 음악의 밀접한 관계가 이루어졌고, 가사에 따라 항상 새로운 선율과 반주가 붙여졌다(슈베르트, 멘델스죤, 슈만, 프란츠, 볼프, R.슈트라우스, 핏츠너, 브람스, 레거). 19세기 후반의 가곡은 보수적(프란츠, 옌센, 브람스), 현대적(리스트, 바그너, 볼프, 레거, 핏츠너, R. 슈트라우스)인 2가지 부류로 발전되었다. 브람스는 신독일 악파와는 반대로 민요적 단순성을 가진 가곡을 작곡하였다(사포의 송가 op.94,4; 아름다운 마겔로네 op.33). 

○합창음악은 당시 일반 시민들에 의해 육성되었다. 합창단이 많이 조직되었고(‘베를린 노래 아카데미’, ‘베를린 리더 타펠’, ‘리더 크란츠’). 다양한 원인과 출발점을 가진 합창운동(베를린 리더타펠, 팔레스트리나 르네상스, 바하 르네상스)은 -처음에는 남성합창, 혼성, 여성합창 순으로- 19세기 전반에 일어났다. 무반주 4성부의 민요적 장절 합창곡이 선호되었고, 브람스는 민요적 단순성을 가진 장절 무반주곡들을 당시 감정이 지나치게 풍부한 미사여구들에 반대하여 작곡하였는데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합창양식이 되어 20세기에도 계속 영향을 끼쳤다. 

○피아노 음악에서는 새로운 소곡 형식들이 낭만주의 초기에 새로운 장르로 나타났다: 녹턴(필드, 쇼팽), 무언가(멘델스존), 인터메쪼(브람스), 앙프롱튀(슈베르트), 모망 뮈지코(슈베르트) 그리고 다른 성격적 소곡(슈만, 레거). 살롱음악, 가정음악, 네 손의 피아노곡 이외에도 연주회를 위한 음악이 발전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살롱, 연주회장, 출판사, 피아노공장이 많았던 빠리를 중심으로 피아노 문화가 발전했다. 

베버는 테크닉이 효과적으로 결합된 색채적 피아노 양식을 만들어 냈다(옥타브, 아르페지오 등).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장인성을 피아노에 옮기려고 노력했고, 베를리오즈의「환상 교향곡」을 피아노 악보로 만들면서 오케스트라의 음악방식을 피아노에 적용했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풍요한 음향과 환상적, 시적 표현 등을 담고 있다(대 환상 심포니 1834, 교향적 협주곡 1834/35, 환상적 론도 1836, 죽음의 춤 1859 등). 브람스는 교향적 성격과 표현이 강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다(피아노 협주곡 1번 d 단조, 2번 Bb 장조). 19세기 후반에 피아노 협주곡은 장인적인 독주 악기를 갖는 교향적 협주곡이 되었다. 

○현악4중주는 실내악에서 두드러졌다(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드보르샥, 브람스, 레거). 1830년 이후 낭만적 고전주의에서 대립관계가 발전되었다. 멘델스죤에 의해 준비된 고전주의자들은 음악외적 영향들을 거부하였고(네겔리), 전통적인 고전주의 형식을 강조하였다. 더욱이 후기 바로크 요소를 강조하였다(브람스). 고전과 낭만주의로부터 분리된 현대주의자들(리스트, 코르넬리우스, 뷜로우, 바그너)은 표제음악을 작곡했다. 

프랑스에서는 생상, 프랑크, 포레 등에 의해서, 동유럽에서는 민속적 음색의 현악 4중주(차이콥스키, 보르딘, 드보르샥, 스메타나)들이 많이 작곡되었다. 

○심포니에서는 각기 베토벤을 승계한다고 주장하는 두 부류가 나타나는데, 고전적 심포니를 낭만적 기법으로 확대시키려는 고전적 입장에선 작곡가들(슈베르트, 멘델스죤, 슈만, 브람스, 브루크너, 시벨리우스, 차이코프스키 등)과 음악 외적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심포니 형식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프로그램 심포니(베를리오즈)와 교향시(리스트, 슈트라우스)를 발전시켰다. 

프로그램 심포니의 창시자는 베를리오즈이다. 그는 표현력이 강한 오케스트라 언어로 프랑스의 음악적 낭만주의를 주도 하였다.「환상 교향곡」(1830)에서 그는 새로운 관현악법의 효과, 지도동기형태의 사용을 통한 성격묘사, 시적 표제가 확대된 구조 등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그는「파우스트의 여덟 장면」(op.1, 1828/29),「이태리의 헤롤드」(1834),「로미오와 쥴리엣」(1839),「죽음과 승리의 대 심포니」(1840)를 작곡하였다. 리스트는「파우스트 심포니」(1854/57),「단테심포니」(1855/56)를 남겼다.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는 19세기 초에 발전하였다. 소재를 전설과 동화로부터 취했고, 자연(숲, 바다)과 초자연(유령, 악마의 힘)이 주된 테마이다. 독일의 민족적 오페라로 불려지는 베버의「마탄의 사수」(1812)는 민속적, 모험적, 소름끼치는 내용을 가진 전형적인 낭만주의 오페라이다. 이미 여기에서 지도동기(Leitmotiv)와 상징적 음향이 나타난다(후에 바그너는 이러한 것들을 능숙하게 사용하였다). 바그너는 첫 창작시대에「방황하는 화란인」(1843),「탄호이저」(1845),「로엥그린」(1850)을 작곡하여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 전통을 계승한다.「방황하는 화란인」과「탄호이저」는 번호오페라를 회상시키지만, 로엥그린」에서는 이전의 독립적으로 번호 붙은 음악들이 아닌 일관작곡된 음악이 전체를 이룬다. 바그너는 1850년경 음악극으로서의 오페라, 종합 예술 작품(Gesamtkunstwerk), 지도동기의 이론을 세운다. 오페라는 일관 작곡된 바그너의 음악극(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창, 니벨룽엔, 파르지팔)에서 절정을 이루며, 또한 모든 예술의 연합을 추구하였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된 낭만적 요청이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후에 오는 작곡세대를 위한 모델과 형식이 되어 20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다(R. 슈트라우스, 핏츠너, 바인가르트너, 쉴링스, 스메타나, 글링카, 무소르스키). 

프랑스에서는  마이어베어(악마의 로베르, 1831; 청교도,1836), 롯시니(윌리암텔, 1829), 오베르(포르티치의 벙어리딸, 1828)등이 그랑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19세기 이태리 오페라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베르디는 인간의 성격, 상황, 운명에 관심을 가졌다(나부코, 리골렛토, 일 트로바토레, 춘희, 라 트라비아타, 가면무도회, 아이다). 그의 40년대 두 오페라는 문학작품을 소재로 하였다:「맥베드」(셰익스피어, 1847),「루이자 밀러」(쉴러,1849). 후기작품은 강력한 성격묘사(오텔로, 1879), 서정적 코메디(팔스타프, 1893)양식으로 작곡되었다. 

그 외 오페라 작곡가: 

  이태리: 벨리니, 도니젯티,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푸치니, 
  프랑스: 보옐디외, 베를리오즈, 오펜바하, 들리브, 비제 

그 외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 
호프만: 물의요정(1816) ,   
슈포어: 파우스트(1816), 예쏜다(1823), 산신(1825), 연금술사(1830), 십자군(1845),  
베버: 오이뤼안테(1823), 오베론(1826) 
마르슈너: 흡혈귀(1828), 사제와 유대인 여자(1829), 한스하일링(1833) 

○춤곡 

왈츠는 사교춤으로서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미뉴엣은 (최초로 하이든에게서 스케르쪼로서) 낭만주의의 성격소곡에서 그리고 현악 4중주에서는 양식화되어 사용되었다. 

오페렛타는 파리로부터(오펜바하) 새로운 장르로서 유럽의 중심지로 상륙하였다(J. 슈트라우스, 밀뢱커, 주페). 

○낭만주의 교회음악은 연주를 위한 성격이 짙었고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나가는 교회음악의 모습을 띠고 있다. 19세기 중엽에는 팔레스트리나의 교회음악이 재평가되고 아카펠라 창작 기법이 다시 부흥되기 시작하였고, 그레고리오 성가의 수집과 연주 방법의 연구가 활발하여졌다. 작곡가에 따라서는 중세나 르네상스의 창작기법을 다시 이용하였다. 리스트는 교향시를 쓸 때에는 신독일 양식을 사용했지만 그의 교회음악 「성가미사」(1865)와 「레퀴엠」(1868), 「남성합창미사」(1848)에서는 그레고리오성가나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사용하였다. 팔레스트리나와 그레고리오 성가를 보급시키려는 운동은 체칠리아 협회(1868)와 교회음악 학교(1874) 두 기관에 의해 주도되었다. 신교에서는 바하가 교회음악의 모델이 되었다. 바하운동은 주로 시민 합창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베를린 노래 아카데미’는 멘델스죤의 지휘아래 바하의 마태수난곡을 공연(1829)하여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합창음악은(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브루크너)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 양식을 도입하였고 대규모 관현악 반주도 사용하였다. 칸타타, 오라토리오, 미사, 레퀴엠이 이 시대에도 계속 작곡 되었지만 이중에 특별히 중요한 것은 오라토리오와 레퀴엠이다. 헨델의 전통양식에 낭만주의 화성어법을 도입한 멘델스존의「엘리야」, 베를리오즈의 오라토리오「예수의 어린시절」(1854)과「죽은 자를 위한 큰 미사」(1837), 예배의식과는 무관한 브람스의「독일어 진혼곡」, 로레의「레퀴엠」등은 낭만시대의 주요 작품이다. 

 4.역사주의 

낭만주의는-문학의 영향으로- 과거 음악에 대해 재인식하였다. 바하에 대한 연구, 그 이후 팔레스트리나에 대한 연구는 점점 이전 음악양식의 부활의 결과를 낳았고 연구 범위는 중세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민요의 수집과 모방은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낭만주의는 옛 전통들과 관련을 맺었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이러한 옛 전통들을 그들의 성향에 맞게 개조하고, 그들의 시적 정신을 채우고, 옛 전통의 구조들을 변화시켰다. 작곡가들은 옛 음악을 당시의 견해로 보지 않고 각자 자신들의 작곡을 위해 관점을 달리하였다. 바로크의 장르들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낭만적 상상력을 돕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5.연주회와 음악 비평 

19세기의 예술과 음악은 소위 교양시민들이 주도하였다. 연주회 기업이 시민층에 의해 생겨났고, 연주회는 모든 시대의 음악을 모든 청중에게 제공하였다. 비평가들은 연주회의 경험을 반영하였다. 작곡가이며 동시에 작가였던 이들은(호프만, 베버,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 핏츠너) 스스로 자신의 연주회를 비평하였다. 슈만은 신 음악 잡지(Neue Zeitschrift für Musik)를 창간하고 허구의 인물로 구성된 ‘다윗동맹원’을 고안해 냈다. 

관객의 계층이 다양하였고 그들의 요구도 서로 달랐으므로 새로운 유형의 음악 작품들이 발전되었다. 예술음악과 경음악이 분리되기 시작했고, 살롱음악이 성행하였으며, 대가적인 재주와 능력이 중요시되었다. 피아노와 악보가 보급되었고, 음악은 음악회장, 오페라극장이외에도 교회, 살롱, 가정에서 연주되었다. 

등록일자: 2004-08-15
장동욱
 

7. 음악관 

(1) 감정미학(표현미학)과 형식미학 

낭만주의는 고전주의 음악언어·장르·화성학을 계승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고전·낭만시대 사이에는 역사적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음악에 새로운 시적·형이상학적 요소가 들어와 이성과 감정, 형식과 내용상의 조화가 깨지고, 18세기 계몽주의의 합리성과 대립되어 주관적인 감정이나 감상성을 중시하게 된다. 

[감정미학] 19세기 지배적 음악관은 감정미학이다. "음악은 감정을 표현 한다"는 일반적 생각이 가장 강조된 시기가 바로 낭만주의이며, 여기서는 특히 주관적 감정이 음악에 표현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박켄로더, 티크, E. T. A.호프만 등은 음악적 낭만주의의 길을 열어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로지 주관적 감정만이 무한성에로의 문을 열어주고, 초월성을 예감하게 한다고 주장하면서, 음악이 바로 이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하였다. 

"... 이러한 감정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발명되고,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된 것이다. 이 발명품 중에서 음악이 가장 놀라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초인간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기 때문이고, 우리 심성의 움직임을 물체가 없이 황금빛 구름의 화성으로 감싸서 우리의 머리 위에 보여주기 때문이다"(박켄로더). 

이 시기에는 "예술의 근본적 모델이 되는 것은 천성적으로 주어진 자연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자연이다"라는 생각이 나타나면서 자연 자체보다는, 만들어지는 자연을 창조하는 예술가가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예술가의 위치는 상승하게 되어, 천재로서 숭배 받게 된다. 

19세기에 음악은 예술 가운데 가장 낭만적 예술로 평가되었는데, 감정을 개념 없는 언어로 표현하는 추상적 특성이 다른 어떤 예술보다 두드러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음악은 인간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감정과 무한의 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낭만적인 예술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음악을 통해 현실을 벗어난 이상의 세계, 동경의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고 여기서 낭만주의 예술종교가 탄생하였다. 음악은 현실의 괴로움과 추함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세계로 이해되면서, 종교의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절대음악 사상] 음악이 개념적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무한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생각은 기악음악을 강조하는 절대음악 사상을 낳았다. 즉 텍스트나 가사 같은 개념에 매이지 않고 또한 어떤 의도나 목적, 기능에 메이지 않은 "순수한 기악음악"이 최고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확립되었다. 

"독자적 예술로서의 음악을 말한다면, 이는 언제나 기악을 의미한다. 기악은 어떤 다른 예술의 도움이나 혼합을 모두 배제하는 독자적인 것이며 단지 음악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적 본질을 순수하게 말한다. 음악은 모든 예술 중의 가장 낭만적인 것이며... 음악은 미지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열어준다."(E. T. A.호프만의 베토벤 5번 교향곡 비평). 

이러한 절대음악 사상은 한슬릭("음악미론")과 브람스에 의해 19세기 후반기에 절정을 이룬다. 

[표제음악]  19세기에는 절대음악과는 상반되는 표제음악이 새롭게 등장하여 발전하였다. 낭만주의 시대는 - 아이러니 하게도- 음악과 문학의 관련성이 강조되었다. "시적인 것"(das Poetische)을 예술의 본질로 보았던 낭만주의 문학가의 영향을 받아 이 시기의 작곡가는 음악의 시화(詩化 Poetisierung)를 추구하였다. 즉 음악과 문학은 그 재료만 다를 뿐 추구하는 본질은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슈만은 자신의 작품에 시적인 표제를 붙이거나,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는 작곡가가 음악의 시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음악과 문학과의 연관성은 베를리오즈, 리스트 등에 의한 표제음악에서 절정에 달한다. 표제교향곡, 교향시 등과 같이 제목이나 줄거리로 작품의 "음악외적 내용"이 알려지는 기악음악을 일컫는 표제음악은 리스트, 바그너 등에 의한 "신독일악파"에 의해 그 미학적 가치가 주장되었다. 이들은 표제음악이 베토벤의 교향곡의 전통을 잇는 발전된 음악의 형태라고 말하면서 그 정당성을 피력했다.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대립은 19세기 후반 매우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형식미학과 표현미학(감정미학)의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즉 음악 자체를 미적 대상으로 파악하려는 절대음악은 형식미학으로, 음악에 어떤 감정이나 개념적 내용을 표현하려 시도한 표제음악은 내용 미학으로 정당화되어 서로 대립했다. 

오희숙
목록